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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목사소개/정명석목사의삶

[나만이 걸어온 그 길] 11. 이런 밤이 다시 오지 않기를

JMS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그 길> 중

이런 밤이 다시 오지 않기를…



행복은 우리들을 만나기 원한다! 
다만 우리와 행복 사이에 건너기 어려운 강이 있고 넘기 어려운 산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각기 지구력을 가지고 홀로 넘어가야 된다. 넘기만 하면 그 행복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이는 20대에 만나게 되고 혹은 30대에 혹은 40대에 혹은 50대에 혹은 60대에 혹은 70대에 만나게 되며 어떤 이는 80대가 넘어야 만나게 된다. 이상의 세계, 행복을 위해 어서 뒤로 돌아선 몸을 다시 돌려 가던 길을 향해 바로 걸어가야 되겠다. 그러면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 그 바라던 행복의 세계를 만나고야 말게 된다. 이왕이면 보다 젊은 날에 만나야 되겠다. 

행복은 10년 마다 혹은 5년 마다 혹은 3년 마다 더러는 1년 마다 온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땀을 줄줄 흘리며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면서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 되겠다. 그러다 보면 하늘이 준 그 행복을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서 세상 행복도 만나게 되고, 하늘 행복도 만나게 되었다. 또 앞으로 비바람 눈보라를 만난다 해도 그로 인해 더 큰 행복과 더 큰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마음을 접고 이 밤도 날을 지새우며 하늘이 준 삶에 충성할 뿐이다. 젓가락 같이 어린 묘목 때는 바람도 많이 타고 파도에 휩쓸림도 많아 갈대와 같은 인생살이지만 보다 팔뚝 같은 성장한 삶 속에는 바람도 눈보라도 보다 견딜 수 있고, 더 성장하여 허리통 같은 성장된 인생 연륜이 되면 그 어려움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법이다. 그 때 쯤이면 자신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다. 

이러한 삶을 나뿐만 아니라 모두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여기 나만이 걸어와야 했던 외로운 인생 소롯길, 길고도 깊은 계곡길이 있었다. 
처음엔 그 길을 포기하고 싶었고 돌아가고도 싶었지만 나의 인생길은 그래도 하늘이 준 개성의 길이라 피해갈 수 없고 돌아 갈 수도 없는 길이었기에 사망의 음침한 계곡과 같은 길을 할 수 없이 걸어 들어갔다.

군대 제대 후 그 이듬 해인 스물 여섯 살 때였다. 
군에서 구사일생으로 20여회 죽을 고비를 넘겨 살아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천명임을 깨닫고 노방 전도를 많이 하고 다녔다. 150리나 되는 전주와 70리 정도 떨어진 공주로 많이 다녔고 80리 정도 떨어진 대전 지역에도 나갔다. 어느 때는 12킬로미터 떨어진 금산으로 나갔고 4킬로미터 떨어진 대둔산 관광지나 진산에도 나갔는데 처음엔 금산과 대둔산 같이 가까운 곳을 주로 걸어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 때 너무 자주 나갔기 때문에 교통비가 없었다. 하기야 요즘에도 교통비가 떨어져 집회 장소에서 쩔쩔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더 이해가 잘 될 줄 믿는다.
좀 떨어진 전주나 대전과 같은 곳에 전도하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대개 새벽 3시쯤 된다. 

요즘 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옛날 한양길 걸어 다니던 이야기를 하면 생소하듯이 내가 걸어다녔던 이야기를 하면 생소할 것이다. 100리 길 혹은 150리 길은 60킬로미터나 되는 길인데 차로 가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다. 그 때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대였다. 밤 12시가 되면 노점상인 혹은 시내 모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게 되니 그 때가 되면 결국 전도 일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갈길 비포장 길을 급히 걸어 집으로 왔다. 
낮에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농촌의 삶이고 신앙 생활만으로는 끼니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아침이 되기 전에 급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신앙을 반대할 때이고 어머니 역시 내가 하는 일을 이해 못할 때였다. 어느 부모라 해도 그 때 나의 일은 반대하였을 것이고 이해 못하여 산이 울리도록 고함을 쳤을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전도를 마치고 진산을 거쳐 성황당 소롯길 앞섶골 재를 홀로 걸어 넘어오고 이랬었을 때였다. 
밤에는 온몸이 오싹거리는 밤길을 마치 스님이 주문을 외우듯 성경을 외우며 찬송도 하면서 걸었다. 그 때 성황당 소롯길은 30년 된 왜송나무와 소나무로 밀림이 우거져 혼자 걸으면 낮에도 머리 끝이 조금씩 설 정도였다. 하기야 나무가 없는 요즘도 그 큰 고개를 넘을 땐 인가 한 채 없으니 밤에는 물론이고 낮에도 무서운 산길이다. 이 고개를 넘을 때 호랑이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옛날 아닌 이 세대 사람들 중에도 한 두 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에 밤에 이 길을 오르내리면 삐쭉삐쭉 머리끝이 섰다.그 날 밤 열 나흘 달은 중천에 떠 나무 사이로 비치고 죽은 자의 넋을 달랜다는 마음 섬짓케 하는 구구새까지 울고 있어 큰 기침도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그 큰 고개를 올라오고 있었다. 성황당 나무 정자 정상을 20미터 쯤 남겨 놓고 “얼마나 남았나”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 보았다. 옛 어른들은 밤길을 걸을 때 땅만 내려다보고 걷는다고 했지만 나는 밤에 산길을 세상에서 두 번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걸어 다녔다. 오히려 나는 나를 두고 밤 호랑이라고 자부하기도 하였다.앞섶골 정상 성황당에는 옛날에 큰 벼슬을 했던 사람이 심었다는 300년이나 된 팽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 큰 넓적 바위가 깔려 있다. 열나흘 달빛은 휘영청 부서져 내리고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밤이었다. 달 그늘 아래로 정상을 버뜩 쳐다 보았다. 

“휴! 이제 20미터 정도 남았구나.” 

100리 길도 넘는 먼 길을 벌써 다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황당 나무 밑 넓적 바위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새벽 3시에 누가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지? 밤길 가다 앉아 있는 것인가?” 

하고 약간 무서운 맘으로 대여섯 발자국을 더 걸었다. 
그 때 내 마음에 이상한 전율이 흘렀다. 
다시 쳐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고 아주 큰 짐승이 쭈그리고 앉아서 달밤에 걸어 올라 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자세히 보니 쭈그리고 앉아 있는 키가 꽤 컸다. 그 놈은 꼼짝도 안하고 주인을 맞는 말만한 개처럼 앉아서 담대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지선(空地線)에 의해 보니 확실하고 또렷한 몸집의 짐승이었는데 몸집은 컸지만 날씬하였다.그 때 천천히 걷다 발길을 멈추고 말았다. 



그 순간 나에게 영감이 걸렸다. 
“앗! 호랑이로구나.” 
평소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너 밤길을 그렇게 걷다가 언젠가 호랑이를 만날거다.” 
했던 말이 번뜩 떠오르며 ‘그 날이 이 날이었구나. 거미줄에 매미 걸리듯 난 걸렸구나. 하지만 아직은 덜 걸렸어. 문제를 해결해야지.’ 했는데 예상치 않던 고함이 나왔다.
“앗! 앗! 으앗!” 
그런데 으앗 소리를 쳤지만 그 소리가 속으로만 나왔다. 
땀이 계속 흘렀다. 
그야말로 뜨거운 비지땀이었다. 
옷이 젖어 버렸다. 
뒤로 돌아 서려고 발길을 옮기려 하였지만 발이 굳어 천근 쇠덩이를 매단 것처럼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 때야 하나님이 생각났다. 
“하나님, 하나님!” 

역시 그 소리도 속에서만 났지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정말 심장이 놀라고 간이 콩알 만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위기를 피할 길이 없었다. 담대히 하나님을 부르며 앞으로 걸어가려 하였지만 앞으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이제 걸어 내려오나 보다.’ 나의 손에 쥔 것이라고는 전도지 밖에 없었다. 방어할 무기가 없었다. 그러나 손에 몽둥이나 총이 있었어도 이미 마음이 꺾여 움직여지지 않을 때라 다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호랑이가 어떻게 하나 쳐다만 보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정말 장승같이 우뚝 선 채 마음만 살았지 몸은 시체였다. ‘달빛이 구름 속으로 다 들어가 버렸으면 호랑이도 안보일텐테…’ 했지만 무서우니 정신이 차려지고 더 잘 보이기만 하였다. 

기도했다. 
“하나님 저 호랑이 좀 속히 끌고 가 주십시오. 
하나님밖에 이 밤중에 내 문제를 해결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면 다음에 회개하겠습니다. 지금 회개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 떨리는 마음에 지은 죄 생각도 안납니다. 제발 저 호랑이 좀 속히 없애 주옵소서.

이것도 호랑이가 걸어 내려오지나 않나 하고 눈을 뜨고 기도했다. 너무도 짧은 기도였다. 
그런데 그 때 호랑이가 일어나 정상에서 반대쪽으로 넘어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 무서움이 사라지면서 힘과 담대함이 왔다. 소리를 지르니 소리가 입밖으로 나왔다. 결국 나머지 20미터를 올라왔다.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러 옷이 비맞은 것 같았다. ‘아니 사람 몸에 이렇게 땀이 많단 말인가.’ 하고 또 하나를 깨달았다. ‘인간 몸에 때도 많고 땀도 많구나.’ 그제야 나는 호랑이한테 놀라면 옷이 땀으로 비맞은 듯이 젖고 사족이 굳어 버린다는 말을 체험케 되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더니 하나님이 나로 호랑이 체험을 뜨겁게 시킨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왜 나에게 이런 밤을 주었을까?’ 하고 평소 정상에 오르면 앉던 넓적 바위 위에 앉았다. 힘이 빠지고 그야말로 맥이 풀려 버렸다. 기력이 백살이나 먹은 노인 같아서 잠깐 누웠다. 그 자리는 바로 아까 호랑이가 앉아 있었던 반드름한 장소였다. 순간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떠보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어나 400미터밖에 남지 않은 집으로 걸어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다시는 이런 밤이 없기를 기도하며 집을 향해 갔다.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추억으로 남아 ‘나만이 걸어온 그 길’ 이라는 글을 쓰게 되었고 지금은 자랑삼아 제자들에게 어젯밤에도 그 곳에 가서 옛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모두 배꼽을 쥐며 웃고 나의 옛 체험에 큰 감명을 받아 후대에 산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자고 하며 하나님께 한 시간이 넘도록 기도하고 하늘을 찬양하였다.
“아! 그 날 밤 나만이 걸어온 사망의 음침한 계곡이어라!” 
하지만 하나님과 주님은 나에게 목자가 되어 그를 영원히 전하는데 위대한 간증거리가 되게 하였다. 

그런 밤을 간증하고 싶다. 
그 날 밤의 체험은 사서도 할 수 없고 돈으로도 금으로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다 나를 기르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경륜임을 믿고 감사할 뿐이다.